같은 업계에서 한솥밥을 먹는 동료 뮤지컬 배우 간에 고소전이 벌어졌다.

뮤지컬계의 '친분·인맥 캐스팅' 논란으로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 옥주현과 뮤지컬 배우 김호영 간에 벌어진 이른바 '옥장판 사태'가 법정 싸움까지 번지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호영과 옥주현 간에 벌어진 익명의 저격 사건은 지난 20일 옥주현이 김호영을 형사고소(명예훼손)하며 이제 공식화됐다.

지난 14일 김호영은 자신의 SNS에 옥장판 사진과 함께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을 올려 '엘리자벳' 10주년 캐스팅에 불만을 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김호영은 이 게시물을 삭제했지만 이미 누리꾼들 사이에서 "김호영이 동료 배우 옥주현을 저격했다"라는 말이 퍼지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들의 관심은 옥주현이 출연 예정인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향했고, 뮤지컬 커뮤니티 등에서는 옥주현의 ‘엘리자벳’ 캐스팅 관여설이 화두가 됐다.
이에 옥주현은 고소 전 SNS를 통해 "‘해명’은 제가 해야 할 몫이 아니다. 수백억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모든 권한은 그 주인의 몫이다. 해도 제작사에서 할 거다"라며 선을 그으며 "전 무례한 억측, 추측을 난무하게 한 원인 제공자들 그 이후의 기사들에 대해 고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입장을 올렸다.
그러면서 "사실 관계 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 혼나야죠"라고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김호영 측은 사실 확인 없이 고소한 옥주현 측에 유감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맞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뮤지컬계에 논란이 거세지자 22일에는 한국 뮤지컬을 일군 1세대 배우들 남경주, 최정원, 박칼린 감독 등이 공동으로 준엄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고소전을 펼친 두 배우의 경거망동을 꾸짖으며, 무너진 뮤지컬 업계의 도리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모든 뮤지컬인께 드리는 호소의 말씀'이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한 뮤지컬이 관객분들과 온전히 만날 수 있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위치와 업무에서 지켜야 할 정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지켜져야 하는, 세 가지 '정도(正道)'를 제시했다.
먼저 '배우'의 역할에 대해서는 역량을 갈고 닦고 동료와 스태프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스태프'의 역할은 배우가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배우들의 소리를 듣되, 몇몇 배우의 편의를 위해 작품이 흘러가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제작사'에 대해서는 "공연 환경이 몇몇 특정인 뿐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 배우에게 공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참여하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하기 위해 가장 선봉에 서서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지금의 이 사태는 이 정도가 깨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관해온 우리 선배들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우리 선배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수십 년간 이어온 뮤지컬 무대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다. 뮤지컬을 행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불공정함과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직시하고 올바로 바뀔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입장문이 공개된 뒤 배우 김소현, 신영숙, 정선아, 최유하, 최재림, 조권 등과 관련 스태프들이 자신의 SNS에 역시 이 입장문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르며 지지한다는 의사를 전했고, 몇몇 배우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사진을 올려 무언의 제스처도 더했다.

이번 사태는 오는 8월 개막하는 뮤지컬 '엘리자벳'의 10주년 공연에 옥주현과 그의 절친인 이지혜가 캐스팅되고, 기존에 이 작품에 참여했던 김소현이 제외되면서 불거졌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엘리자벳’ 캐스팅은 강도 높은 단계별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새로운 배우들과 지난 시즌 출연자를 포함한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특성상 뮤지컬 ‘엘리자벳’의 캐스팅은 주·조연 배우를 포함해 앙상블 배우까지 모두 원작사의 최종 승인 없이는 불가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의 입장문을 들어보면 공정하고 상식적인 일들이 뮤지컬 업계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의 성명서가 비단 이번 사태로만 국한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작품과 배우는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며 “배우가 없는 작품은 없고, 작품이 있어야 배우도 있는 게 아닌가. 서로 수십 년간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타성에 젖은 것”이라고 지적하며 공연계가 스스로 뉘우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우려가 되는 점은, 관객들이 이번 사태로 공연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볼까 하는 두려움”이라며 “코로나19로 공연계 종사자들은 수년간 힘든 시간을 겪었고 이제야 다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무대를 준비하는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자신의 공연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 논란이 공연계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에는 옥주현, 이지혜, 신성록, 김준수, 노민우, 이해준, 이지훈, 강태을, 박은태, 민영기, 길병민, 주아, 임은영, 진태화, 이석준, 장윤석, 문성혁, 김지선 등이 출연한다.
- 다음은 뮤지컬 1세대 입장문.
최근 일어난 뮤지컬계의 고소 사건에 대해, 뮤지컬을 사랑하고 종사하는 배우, 스태프, 제작사 등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는 뮤지컬 1세대의 배우들로서 더욱 비탄의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큰 재앙 속에서도 우리는 공연 예술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 유지해왔고 이제 더 큰 빛을 발해야 할 시기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저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한 뮤지컬이 관객분들과 온전히 만날 수 있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과정을 함께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위치와 업무에서 지켜야 할 정도가 있습니다.
1. 배우는 모든 크리에이티브팀의 컨셉을 무대 위에서 제대로 펼쳐내기 위해서 오로지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뮤지컬의 핵심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배우 간의 앙상블이기 때문에 동료 배우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배우는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찬사를 대표로 받는 사람들이므로 무대 뒤 스태프를 존중해야 합니다.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됩니다.
2. 스태프는 각자 자신의 파트에서 배우가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습 진행은 물론 무대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배우들의 소리를 듣되, 몇몇 배우의 편의를 위해 작품이 흘러가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또한 모든 배우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3. 제작사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 배우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며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공연 환경이 몇몇 특정인 뿐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 배우에게 공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참여하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하기 위해 가장 선봉에 서서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이 정도가 깨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관해 온 우리 선배들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우리 선배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수십 년간 이어온 뮤지컬 무대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습니다. 뮤지컬을 행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불공정함과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직시하고 올바로 바뀔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뮤지컬의 정도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들이 동참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스스로 자정노력이 있을 때만이 우리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고 멋진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 최정원, 배우, 연출 및 음악감독 박칼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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